KOTO COFFEE ROASTERS 사카타 마사쿠니

KOTO COFFEE
ROASTERS

사카타 마사쿠니

“궁극의 이상은 커피의 6차 산업화” “여인”의 강점을 살리는 로스팅인

2017년 6월 나라현 카시하라시에 오픈하고, 2020년 나라현 고죠시의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가게를 이전한 로스터라 KOTO COFFEE ROASTERS. 오너 사카타 마사쿠니씨는 2019년 재팬 로스팅 챔피언십(이하 JCRC)에서 우승을 한 적도 있는 로스터이다. 젊었을 때는 배낭여행으로 세계 80개국을 여행했다고 하는 사카타씨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하 존칭 생략

스페셜티 커피라는 이상적인 세계

커피 생산지의 풍경을 닮은, 나라현의 자연에 둘러싸인 로스터리 KOTO COFFEE ROASTERS. 옛 민가를 활용한 로스터리는, 오너인 사카타의 ‘JCRC 일본 챔피언’ 이라고 하는 화려한 경력과는 조금 어울리지 않게 보일지도 모른다.

「로스터로서 굳이 지역에 영향을 받을 필요는 없으니, 대자연속에서 콩을 볶고 있어요. 비즈니스로서 볼 때, 로스터리는 도쿄같은 크 도시에서 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은 시골일수록 임대 비용등의 코스트들이 억제되는 면도 있어요. 도매처와 파트너십을 잘만 맺으면 충분히 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습니다.」

현재 47세인 사카타가 스페셜티 커피와 만난 것은 10여 년 전의 일이었다. 당시 부인 곁에서 부업으로 개인 투자자로서 활동하던 사카타는 코스타리카의 친구 집에 놀러가기 전, 도쿄에서 유명한 커피 가게를 10곳가량 돌아다녔던 것이다.

「어디 커피도 전혀 맛있지 않았는데요, 마지막으로 한 곳 네리마에 있는 MAMMOTH COFFEE에서 마신 커피가 놀랄 정도로 맛있었어요. 아마 에티오피아의 예가체페였던 것 같은데, 살면서 경험하지 못한 맛을 느껴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그 길로 사카타는 MAMMOTH COFFEE의 오너로부터 정보를 얻어, 생두도 취급하고 있는 로스터리 카페 사카이 커피를 방문했다. 그래서 코스타리카에서 그 생두를 직접 살 수 있는지 물어봤더니, 그것은 불가능하다며 컨테이너 단위로만 살 수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커피업계의 현실을 엿본 것이다.

「이 사실을 계기로, 스페셜티 커피에 대해 더 알아보다 보니 무계획적인 기부나 지원과는 다른, 서로가 윈윈으로 선순환을 만들 수 있는 구조가 매력적이었어요. 좋은 커피를 만들면, 생산자에게 직접 상응하는 대가를 치를 수 있고, 소비자도 품질이 보장된 맛있는 커피를 즐길 수 있잖아요. 좋은 커피를 만들지 못하면 수입도 올릴 수 없는 현실적인 측면도 있는 반면, 좋은 것을 만들면 생산자의 노력도 보상받게 된다는 점이 멋있게 느껴졌습니다.」

생두를 구매하는 바이어가 되자.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사카타가 노선을 변경해, 유통 단계의 하류에 있는 로스터로 목표를 좁힌 것은 어째서였을까.

「유통의 어떤 단계에서도 맛을 세세하게 식별하지 못하면, 커피의 정당한 가치를 매길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생각하고 일단은 커핑을 공부하는 것부터 시작했죠. 그 후 조그마한 로스터 기계를 구매했는데요, 커피 풍미의 좋은 점이나 단점이 생두에서 비롯되는 것인지, 아니면 로스팅 된 원두에 의해서인지를 확인하려면 스스로 볶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외에도, 생두 바이어는 무역에 관련되는 업무 전반을 처리하고, 현지의 사람들과 많은 소통을 해야하고, 재고를 구매하고 처리해야한다는 리스크들이 매우 크다고 느꼈어요. 그렇기에 생두 바이어를 개인으로서 하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습니다. 로스팅을 하더라도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역할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로스터를 본격적으로 해보기로 했죠.」

결혼을 하고,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주부를 하고 있던 사카타. 2017년 6월 나라현 카시하라시에, 조건이 좋은 빈 점포를 빌리고, 로스팅 기계를 구입하여 로스터리를 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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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계 구조에 위화감을 느끼다

전 세계를 여행해 다양한 가치관에 접해 온 사카타는, 스페셜티 커피 업계의 현실에 적잖이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만큼 기술혁신이 진행되었는데, 생산국에서 수출된 생두를 소비하는 나라에서 볶는 구조가 바뀌지 않은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어요. 생산자가 커피를 판매용 작물로 생산해, 생두로서 수출업자에게 판매하고 있는 것은 1차 산업에 머무르고 있다는 뜻이죠. 그렇기에 부가가치를 매기기 어렵고, 판매 가격은 저렴할 수 밖에 없기 마련입니다. 그 결과 생산자는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지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커피의 6차 산업화라고 생각합니다. 농장이나 지역의 커뮤니티가 커피백등의 가공품도 만들 수 있게 되거나(2차산업), 로스팅한 원두를 판매하거나(3차산업) 하면, 현지에서의 새로운 혁신도 생길 것이에요.」

「시대의 흐름을 생각해 보면, 결국 커피도 와인이나 술처럼 생산자가 스스로 판매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어쨌든, 생산국 사람들이 잘살게 하고 싶다는 게 제가 창업한 가장 큰 이유이자 목표입니다.」

로스팅을 시작한 지 2년 반 만에 참가한 JCRC에서 챔피언이 된 사카타의 목표는 월드 커피 로스팅 챔피언십(WCRC)에서 우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계챔피언 로스터가 되는 것 자체가 사카타의 꿈은 아니다.

「생산국 사람들에게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로스팅 기술을 전해 새로운 산업을 창출하는 일을 돕고 싶습니다. 생산국에서 볶은 원두를 수출하면, 그 나라의 6차 산업화에 기여하고 현지 고용을 늘리는 등 사람들의 삶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그러한 꿈을 내거는 것에 있어, 세계 챔피언이 그런 말을 한다면 설득력이 높아지고, 제 마인드를 공감해주는 분이 많이 생겨 다같이 업계를 바꾸어 갈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단, 저는 그냥 한 명의 로스터로서, 생산국 사람들에게 돈이 더 떨어지는 구조를 만드는 사람중 한 명이 되고 싶습니다.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더욱 더 말하기 편하게 될 수 있도록, 평소에도 자유롭게 제 의견과 생각을 표명하고, 챔피언이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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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관을 깨뜨려 준 여행

기후 현의 민박집에서 태어나 자란 사카타는, 어려서부터 다른 사람들과 같이 생활해야만 했다. 그런 환경이 영향을 미쳤는지, 사카타가 대학생이 돼 배낭여행으로 세계를 누비면서 그 여행의 매력에 빠졌다고 한다.

「일본의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고나 할까, 가치관이 깨지는 게 너무 인상적이었어요. 예를 들어 NHK를 비롯한 일본의 언론들은 어디까지나 일본이라는 하나의 시점에서 전해진 정보로, 중국에서는 중국의, 서양에는 서양의 시점에 입각하여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요. 일본이 세계의 전부가 아니라 세계의 일부라고 파악하니, 사고의 폭이 넓어지더라구요. 그것을 느꼈을 때는, 전 경직된 시각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에 위기감을 느꼈어요.」

사카타가 대학생활을 보낸 시대는 버블 붕괴 후의 취직 빙하기였다. 굳이 정사원으로 취직하지 않고 알바만으로 살아가는 프리터가 젊은이들의 하나의 생활 방식으로서 세상에 침투해 나가는 가운데, 사카타는 대학 졸업 후도 취직하지 않고, 여행을 하기 위해서 친가 민박집의 심부름이나 비교적 수입이 좋은 아르바이트로 자금을 벌고 있었다.

「세계를 돌다 보니 200개 가까이 되는 나라를 다 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어요. 때로는 현지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돈이 충분한 한 해외에서 보내는 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여행가방 하나로 일본을 떠나 2년간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귀국하니 어느새 일본 지폐가 바뀌어 있었더라구요(웃음).」

그러나, 여행을 하는 기쁨이나 자극을 맛보면서 많은 나라들을 둘러본 가운데, 사카타는 새로운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 있었다. 세계의 빈곤 문제를 피부로 느끼는 동안, 여행자였던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게 없어 체념할 수 밖에 없었던 현실에 가슴이 아팠던 것이다.

「그러던 중 우연히 스페셜티 커피와 만나 그 비즈니스 모델을 알게 됐을 때, 이 정도면 여행지에서 만난 빈곤한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도와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페셜티 세계에서 좋은 실적을 가지는 커피 바이어가 되면, 일을 하면서 여행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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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자라는 무기를 활용하다

사카타가 현재의 거점이 되는 옛 민가로 로스터리를 이전함 동시에, 온라인 판매에 힘을 쓰기 시작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가 유행하기 직전인 2020년 1월의 일이었다.

「코로나 시대가 되어, 자유로운 로스터로서 살아가는 것도 좋지 않을까라고 재차 생각했어요. 핸드폰에서 인터넷, 그리고 SNS로 시대가 변하는 것을 지켜봐 온 제가 느끼는 것은, 지금의 상식이 20년 후에는 바뀌어 있을 것 같아요.」

「점점 로스터 인구가 줄고 있는 일본에서, 생존 경쟁이 지금부터 점점 치열해져 가는 가운데, 로스터리로 한 장소에 뿌리를 박는 기존의 비즈니스 모델을 고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생각해요. 가정용 로스터가 판매되는 것을 보더라도, 일반 소비자들이 생산자에게서 직접 콩을 사는 경우는 앞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로스팅의 정점에 올라 컨설팅업을 시작하거나, 자신의 실력을 인정해 주는 곳으로 옮기거나 하는 등, 재빠르게 움직이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직까지 사람을 쓰지 않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러니까 언제라도 돌아올 수 있는 로스터리라고 하는 기지를 확보한 다음, 세계의 어디선가 오퍼가 오면 당장이라도 출격할 수 있을 준비를 하고 있어요」

로스팅에 있어서도, 사카타의 생각이나 가치관은 일관되어 있다.

「비유하자면, 요리사들은 신선한 생선이면 회로, 신선도가 떨어지는 생선이면 삶거나 식초로 조리고는 합니다. 로스팅에 있어서도 그것은 똑같은 것 같아요. 재료 그 자체로 좋은 맛을 낼 수 있는 회만 내놓고 싶긴 하지만, 신선도가 떨어진 생두도 맛있게 볶아서 제공하는 게 로스터의 사명이라고 생각합니다.」

같은 생두를 2번 볶는 더블 로스팅도 그러한 생각의 일환이다. 팔다 남은 원두 등을 더블 로스팅으로 부활시켜 아이스 커피용으로 저렴하게 팔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유연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것도 역시, 여행을 하면서 여러가지 가치관을 접해 왔기 때문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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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남기 위한 최선책을

사카타는 세계 80개국을 돌며 적어도 5년 이상 이국땅에서 지내 왔었다. 그리고 취업 활동을 시작했는데, 도시에서 만원 전철을 타는 순간 회사 생활에 적응하지 못할 것 같다고 느꼈다고 한다. 그런 사카타가 여행자로서 살아가기로 한 것은, 일반사회에 적응할 수 없었기에 도피한 것이 아니고,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혜였을 것이다.

「여행을 통해 여러 가지를 경험했다는 자부심이 있어요. 어디에서라도 살아갈 수 있고,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할 수 있는 것이, 여행가로서 경험을 쌓아 온 제 강점입니다.」

스페셜티 커피의 세계에서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날마다 로스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사카타. 가슴 깊은 곳에서는 지금도, 여행가의 피가 끓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가족을 지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갈 수 있다면 외국에 가고 싶어요. 200개 가까이 되는 나라를 모두 가보겠다는 꿈은 변함이 없습니다. 모르는 세계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크게 설레고, 어쩌면 그곳에서 제 무덤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짆아요. 그러한 장소가 실제로 있는지 없는지는, 보지 않고 결론을 낼 수는 없습니다. 로스터도 언젠가 여행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기대하며 선택한 일이기도 합니다.」

글 : 나카미치 타츠야
사진 : 아이카와 켄이치
번역 : 박치언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항상 로스팅한 다음날, 품질 점검을 위해 커핑을 하는데요, 의도한 대로 로스팅이 되었을 때나 의외로 좋은 결과가 나왔을 때 큰 행복을 느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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