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YPICA GUIDE
Cafe FUJINUMA 후지누마 에이스케

Cafe FUJINUMA

후지누마 에이스케

「살고 싶어지는 동네를 만들어 나가다」 카페를 거점으로 폭을 넓히다

2013년, 토치기현 JR코야마역의 서쪽 출구에서 도보 3분정도 떨어진 거리에 오픈한 Cafe FUJINUMA. 남편과 가게를 열고 싶다는 어머니의 오랜 꿈을 이루기 위해, 후지누마 에이스케씨가 커피와 식사를 제공하는 가게를 열었다고 한다. 현재는, 여러 곳의 점포를 운영하는 한편, 자신의 고향이기도 한 토치기현을 활성화시킬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후지누마씨에게 그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존칭 생략

카페는 말하자면 ‘일본 스타일의 바’

만약 아무런 사전 정보 없이 Cafe FUJINUMA 본점을 방문한 사람은 조금 당황할지도 모른다. 가게 문에 ‘COFFEE & BEER’ 라고 적혀있듯, 주말 저녁에는 맥주 등 알코올류를 제공하는 바이기도 하다.

조금 평범하지 않긴 하지만, 본질적인 기능은 변하지 않는다. 코로나 전까지 카운터 8석, 테이블 12석을 마련하고 있던 가게는, 마치 ‘낮에 운영하는 바’ 였다고 한다.

「카운터가 있으면, 저희도 손님도 한층 대화를 나누기 쉬워집니다. 손님이 저희랑 얘기하고 싶은지, 아니면 자신만의 시간을 원하는지도 선택하는 자리를 통해 짐작할 수도 있고요. 가게는 모두가 대화를 즐기는 공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카운터 좌석에 앉은 손님들이 소외되는 일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카운터석의 매력은 그때그때의 손님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진다는 점이에요. 농담을 할 때도 있고 진지하게 커피 얘기만 할 때도 있지요. 옆에 앉은 생면부지의 손님들끼리 시시껄렁한 대화를 즐기는 가운데, 드라마같은 에피소드가 생기는 경우도 자주 있어요. 사실 제 부인도 이 카운터에서 만났거든요(웃음).」

연령, 직업에 관계 없이 자유롭게 소통하는 것은, 일본에서 옛날에서나 볼 수 있는 광경이었다. 하지만 지금도 Cafe FUJINUMA의 사람들은 그러한 소통을 자주 나누고 있다. 현재 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남자 고등학생은 초등학교 때부터 단골 손님이었다고. 어머니를 따라와 식당 안에서 학교 숙제를 하거나, 인근 대학 유학생에게서 영어회화 레슨을 받기도 했던 그 고등학생은, 바리스타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고등학생 1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계속하고 있다.

살아가는 방향을 바꾼 사촌의 죽음

영화감독을 목표로 했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도쿄의 한 대학에서 영화를 전문적으로 배웠다. 졸업 후는 프리랜서로 영화나 텔레비전의 제작에 종사하면서, 목표에 한 걸음씩 가까워지고 있던 후지누마였지만, 어느 사건을 통해 인생이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제가 22살 때, 의대를 다니던 사촌이 25살의 젊은 나이에 오토바이 사고로 세상을 떠났어요. 사촌은 어릴 때의 주말이나 방학때 저랑 거의 매일 같이 붙어있었고, 제 패션이나 영화에 있어 가장 큰 영향을 주던 존재였어요. 친형을 잃은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느낀 것은, 부모보다 먼저 죽어 버린 현실이 정말 잔인하다는 것이었어요. 사촌의 장례식 때, 사촌의 부모를 비롯한 어른들이 울음을 터뜨리고 있는 모습을 보고 가슴이 너무 아팠습니다.」

「그때까지는, 자신의 인생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살아 왔지만, 그 사건을 계기로 빨리 효도해 두지 않으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사촌은 의대 6학년이었기에, 졸업하고 부모님에게 학비를 돌려줘야 할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기에 더더욱 그렇게 느꼈어요.」

그때 후지누마의 뇌리에 떠오른 것이, 아버지가 정년퇴직하면 같이 가게를 하고 싶다는 어머니의 말이었다. 어머니는 후지누마가 중학생 시절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며 주방에서 요리를 배우기도 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듣고는 했던 어머니의 꿈을 이루는 데 도움을 드리기 위해, 잠시 토치기로 돌아왔어요. 어차피 금방 영화업계로 돌아갈 생각이었고, 동료들에게도 1년 정도 부모님 가게를 도와드리고 돌아올 테니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말해뒀었지요.」

하지만, 몇년만에 고향에 돌아간 후지누마는 깜짝 놀란다.

「개인이 운영하던 가게들은, 모조리 체인점으로 바뀌어 있었고, 상가에는 셔터를 내린 가게들이 정말 많았어요. 도시의 상징이었던 네온빛 오락실은 사라져있었고, 역 앞에 몰려 있던 양아치들도 사라졌었답니다. 그래서 오히려 양아치들의 모습을 보고 뿌듯하게까지 느껴졌어요. 그렇게 토치기현의 쓸쓸한 모습을 보고, 예전처럼 도쿄에 있어도 좋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렇게, 토치기에서 재미있는 일을 해 나가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기분이 부풀어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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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를 고집하지 않아도 좋다

마침내 어머니가 손수 만든 요리를 제공하는 카페를 차리기로 결정한 후지누마. 1년간 토치기현의 영상제작회사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휴일에는 도쿄의 커피 가게를 돌아다니며 공부를 했다.「cafe Bach(카페 바흐)」 등, 유명한 가게를 돌아다니던 가운데, 후지누마는 오픈한지 얼마 되지 않은 「FUGLEN COFFEE ROASTERS TOKYO(이하, 후그렌)」 과 만나게 된다.

「당시 제게 커피는 졸음을 쫓는 음료수에 불과했어요. 바흐에서도 담배를 피우면서 다방이란 공간을 만끽하는 기분을 즐겼어요. 하지만 후그렌에서, 과일 같은 풍미를 가진 커피를 마셨을 때, 그런 제 자신이 부끄러워졌어요. 에어로프레스로 내린 탓인지, 블루베리의 열매가 그대로 들어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착각도 했답니다. 그 때 감동을 받았고, 그때의 상황이 생생히 기억납니다.」

그렇게 충격을 받은 끝에, 후지누마는 「커피 콩의 개성이 분명히 나타나는 커피를 만드는 가게」 를 만드는 방향으로 틀게 되었다.

「가게 안의 벽을 허물고, L자 카운터를 만든 것도, 후그렌의 영향을 받아서 그렇게 했어요. 아직도 후그렌을 동경하고 있고, 일방적으로 우러러 보는 관계로 남고 싶어요. 그래서 아직까지 후그렌에서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고, 대표인 코지마씨를 커핑 모임에서 봐도 다가가지 않는 답니다.」

Cafe FUJINUMA는, 간판도 걸지 않고, 일부러 알아보기 힘든 메뉴를 준비하며 영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도쿄의 카페들을 동경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저희를 따르라는 듯한 분위기였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실제로 초기에는 제 지인들밖에 가게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른 단계에서 제 잘못을 깨달았습니다(웃음).」

「저희는 로스터리 카페도 아니고, 커피 스탠드도 아닙니다. Cafe 라는 무난한 이름을 선택한 것도 어머니의 요리가 메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코로나 때문에 어머니는 지금 현장에서 일하고 계시지는 않지만, 어머니가 만든 드라이 카레의 레시피는 계승되고 있고, 단골 메뉴로도 남아 있어요.」

하지만,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던 것은 아니었다.

「커피에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 잘 못 전해지고 있다고 느꼈어요. 마침, 어머니가 조부모님을 돌봐드리러 1년정도 가게를 떠나셨어요. 그 시기에는, 도쿄 스타일의 커피에 특화한 스타일로 영업했던 시기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너무 멋만 부린다는 느낌을 받아 그러한 스타일은 그만두었습니다. 지금은, 식사도 맛있게 할 수 있고, 커피도 맛있게 마실 수 있는 가게가 새로운 업계의 표준이 될 수 있을것 같아, 이 자체로 멋있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복귀한 2018년부터, 코로나가 터지기까지, 후지누마는 ‘마더스 런치’ 라는 이름을 내걸고, 어머니가 친구들과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기도 했었다고 한다.

「덧붙여서, 아버지는 원래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을 싫어하고, 술이 없으면 사람과 이야기할 수 없는 타입이세요. 개업 전에는 카운터에서 술을 마시며 모두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하셨는데, 막상 가게가 생기니 부끄러워하셔서, 어머니가 출퇴근하는 것을 배웅하기만 하시고 계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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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마을의 기반을 만들다

창업 당시부터 후지누마는 New Standard from Oyama라는 비전을 내걸었다.

「커피뿐 아니라 새로운 문화를 퍼뜨리는 지역을 만들고자, 법인화하고 나서도 회사 이념은 계승하고 있어요. 코야마 지역도, 미국에서 가장 살고 싶은 도시로 꼽히는 포틀랜드처럼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이 가게도 츄리닝과 슬리퍼를 끌고 가는 음식점과는 다른 공간을 만들고자 노력해왔어요. 생활에 녹아 있지만, 멋지면서 울타리가 없는 공간. 그리고 살짝 옷차림에 신경을 쓰고 올만한 그런 장소를 목표로 해 왔습니다.」

「제 역할은 도쿄보다 토치기가 재미있다고 모두를 세뇌시키는 것입니다(웃음). 실제로 도쿄에서 살고 있던 제 고향 친구도 토치기로 돌아와 저희 가게에서 일하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코야마역 앞의 가게들이 폐점하는 등, 사회구조의 변화가 가져오는 지방도시의 쇠퇴는 멈추지 않고 있다. 한편, 그런 상황에 위기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지역을 활성화시키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면, 코야마역의 주변이나 대로변의 보도에 오픈 테라스를 상설해, 빈 장소에 가게를 낼 수 있게 촉진시키는 #테라스오야마 라고 하는 민관 프로젝트가 2019년부터 시작되고 있습니다. 또한 2021년 4월부터는, 약 2개월에 한 번꼴로 거리를 살리기 위한 대책에 대해 시민의 의견을 듣는 자리도 열리고 있어요.」

「무엇이든지 다 있는 코야마 지역은 살기 편한, 잠재력이 있는 지역이에요. 그것은 여기서 계속 살던 사람들과, 이주해 온 분들이 가지고 있는 공통적인 인식이에요. 하지만, 뒤집어 보면 이렇다 할 특징이 없는 지방도시이기도 하지요. 코야마의 어필 포인트에 대해 소개도 못하고, 자랑할 만한 곳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이 가슴 피고 코야마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고 싶어요. 최근에는 근처에 있는 강을 서핑 관광자원으로 삼아, 서핑 보드를 들고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을 볼 수 있게 하기 위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중입니다.」

시청, 현청과도 친밀한 관계를 쌓아온 후지누마 커피. 후지누마 커피는 코야마시와 제휴한 프로젝트나, 토치기현의 고향 복귀 사업처럼 지역 활성화를 위한 연락을 받으면, 가능한 한 승낙해 왔다고 한다.

 「그러한 활동을 하고자 생각한 데에 있어, 저에게 아이가 생긴 것도 큰 영향을 받았어요. 시골에는, 젊은이는 도쿄에 가고, 시골 양아치들만 시골에 그대로 남는다는 분위기가 정착해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그러한 분위기를 없애고, 즐거운 마을, 자랑할 수 있는 마을의 토대를 만들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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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은 지금도 살아있다

사촌의 죽음을 계기로, 어머니의 오랜 꿈을 이루고자 효도의 일환으로서 카페를 개업한 후지누마. 서서히 활기가 없어지고 있는 고향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도 적극적으로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아름다운 스토리를 쌓아 와, 칭송받을 만한 인생을 걸어 온 후지누마이지만, 정작 본인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평가하고 있다.

「가끔 좋게 봐주시는 분들이 있지만, 저는 어디까지나 저 자신을 위해서 세련된 것, 멋있는 것을 하고 싶은 것 뿐입니다.  그 결과로 지역이 흥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자신이 후회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하는 일들이므로, ‘부모를 위해’ 라던지 ‘거리를 위해’ 라고 말을 해버리면 거짓말이 되어 버려요. 제가 반대의 입장이라면, 그런 말을 하고 있는 사람은 못 믿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저 자신만 좋으면 된다는 말이 아니라, 제 자신을 아끼지 않으면, 남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런 후지누마의 생활 방식은, 젊은 나이에 죽은 사촌으로부터 이어 받은 정신이기도 하다.

「살고싶은대로 살던 사촌은, 자동차 면허를 따려고 할머니한테 받은 돈으로 오토바이 2대째를 사는 사람이었어요. 의대를 졸업하면 오토바이 가게가 되겠다고 할 정도로 당돌하게 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위의 의견이나 상식에 좌우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촌을 동경하고는 했어요. 부모보다 먼저 죽은 사촌은 분명 불효를 했겠지만, 그래도 사촌 자신은 후회가 없을 만큼 짧고 굵은 인생을 살았던 것 같습니다.」

「사촌을 맹목적으로 따랐던 것도 아니고, 사촌과 의견이 엇갈린 적도 있었지만, 사촌이 죽은 뒤 고민할 거리가 있으면, 과연 사촌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꼭 생각해보고는 해요. 실질적으로는 자문자답하고 있는 것과 같지만, 절대적이고 유일무이한 존재가 된 사촌이, 제 마음속에서 살아 있어요. 뭐, 죽고 나서 미화되 버린 점은 있지만요.」

글 : 나카미치 다쓰야
사진 : 아이카와 켄이치
번역 : 박치언 

MY FAVORITE COFFEE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내 한 잔'

이제 곧 4살이 되는 아이가 아침에 내려주는 커피에요. 커피를 콸콸 내리는 것을 보며 맛없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막상 먹다 보면 맛있다고 느끼곤 합니다. 그렇게 저도 부모가 됐구나 하는 실감이 들기도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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